[미야베미유키] 모방범
문화산책로/낭독의발견2008/01/10 02:44

(미야베미유키/양억관)
1판 6쇄 2007년 9월
문학동네
그러나 쇼지가 아침 일찍 공장으로 나가고 이제 귀찮게 말을 거는 상대가 없어지면, 어디서 누가 시게코의 글을 칭찬했다는 이야기에서도, 다음 연재는 얼마나 썼느냐는 관심에서도 해방되어, 그때부터 최소 열 시간은 머릿속에 구상해둔 다음 글과 조용히 대면할 수 있게 된다. 아, 이제야 귀찮은 사람이 사라졌어, 하고.
그럴 때의 쇼지는 서로를 갈구하는 커플 옆에 눈치도 없이 달라붙어 있는 둔감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 친구가 사라지고 나면 남은 남녀가 서로 눈을 맞추며 겸연쩍게 웃는 것처럼, 시게코는 컴퓨터 화면과 마주하고 풋, 하고 웃고 만다. 자, 이제 나랑 둘이서만 데이트를 하는 거야.
<모방범 2, 500page>
아마도 그들이 공동체가 숨을 수는 장소에서 살았더라면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있다 하더라도 그 공동체가 가진 치유의 기능으로 많은 부분 회복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대도시는 그렇지 않다. 개인의 내면적 상처를 치유하기보다는 그것을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쉽다. 물론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도 이웃이나 친구, 직장 동료, 또는 개인적 각성이 서로 어우러져 개인의 아픔을 위무해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범죄자에게는 그런 따스한 공간을 일거에 파괴해버릴 힘이 있다. 그 힘은 다른 존재의 고유성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나올 것이다. 그들이 딱히 대단한 내면의 힘을 가진 적이 아니다. '나'가 아닌 타인의 의미를 인정하지 않는 순간, 괴물 같은 힘이 질주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오히려 인간적으로 볼 때 나약하기 짝이 없다.
<모방범 3(옮긴이의 말), 533page>
한 권당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총 세 권(오 년에 걸쳐 잡지에 연재,원고지 육천매 이상), 만만치 않은 분량이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미스테리 연쇄 살인을 소재로 독자의 관심을 놓치지 않으며 이만한 분량을 집필해냈다는 것은 결코 문장력이나 기교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일이다.
사건을 전개해가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작가는 사건을 두고 매스컴을 비롯한 사회적 혼란과 충동이 가중되는 과정 또한 세밀하게 묘사했다. 미스테리 범죄 소설치곤 지나치게 인간적이랄까. 작가는 범죄와 범죄를 다루는 매스컴이 유족들에게 어떠한 심리적 상처를 가하는지 자세하게 그려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다루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이며 '하드보일드'틱한 소설을 휴머니즘에 가깝게 만들었다.
추리적 관점에서 <모방범>에 접근하는 독자들은 피해자들의 심리를 중점적으로 묘사한 소설 중후반부에서 다소 싱겁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사실 둔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범인을 지목해내는 일은 1권에서도 예감할 수 있을 정도니 반전을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는 일은 없으리라. 사건 전개의 대부분이 전반부에 이루어진 마당에 이 소설을 지탱해가는 힘은 과연 사건을 둘러싼 에피소드도 아니고 사회 전체에 퍼진 내면적 상처를 치유해가는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서술되진 않지만 진실을 추구하는 사랑, 이웃의 아픔을 감싸는 사랑이 끔찍한 살인 사건을 유화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을 품는다는 식의 진부한 결론은 아니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저 '살아갈 뿐이다'.
사건을 전개해가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작가는 사건을 두고 매스컴을 비롯한 사회적 혼란과 충동이 가중되는 과정 또한 세밀하게 묘사했다. 미스테리 범죄 소설치곤 지나치게 인간적이랄까. 작가는 범죄와 범죄를 다루는 매스컴이 유족들에게 어떠한 심리적 상처를 가하는지 자세하게 그려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다루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이며 '하드보일드'틱한 소설을 휴머니즘에 가깝게 만들었다.
추리적 관점에서 <모방범>에 접근하는 독자들은 피해자들의 심리를 중점적으로 묘사한 소설 중후반부에서 다소 싱겁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사실 둔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범인을 지목해내는 일은 1권에서도 예감할 수 있을 정도니 반전을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는 일은 없으리라. 사건 전개의 대부분이 전반부에 이루어진 마당에 이 소설을 지탱해가는 힘은 과연 사건을 둘러싼 에피소드도 아니고 사회 전체에 퍼진 내면적 상처를 치유해가는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서술되진 않지만 진실을 추구하는 사랑, 이웃의 아픔을 감싸는 사랑이 끔찍한 살인 사건을 유화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을 품는다는 식의 진부한 결론은 아니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저 '살아갈 뿐이다'.













